줄거리
영화는 자유로운 삶을 즐기며 하와이에서 수의사로 일하는 헨리 로스(아담 샌들러)를 중심으로 시작됩니다. 그는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을 두려워하며 그날그날의 연애를 즐기는 전형적인 바람둥이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식당에서 루시 윗모어(드류 배리모어 )를 만나게 되고, 그녀에게 첫눈에 반하게 됩니다. 처음 대화를 나눈 날의 유쾌하고 따뜻한 분위기는 그에게도 낯설게 느껴지는 감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다시 식당에서 루시에게 인사를 건넨 헨리는 뜻밖의 반응을 마주하게 됩니다. 루시는 그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헨리는 당황하지만 곧 루시가 ‘단기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녀는 1년 전 교통사고로 인해 사고 이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고, 매일 아침 일어나면 사고 이전의 기억만을 가지고 하루를 살아가는 삶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루시의 아버지와 오빠는 그녀가 상처받지 않도록 매일 똑같은 하루를 재현하며 그녀의 삶을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헨리는 그녀의 병에도 불구하고 매일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다시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해도, 진심 어린 감정이 매일 그녀의 마음을 울릴 수 있음을 믿습니다. 루시를 위해 매일 아침 그녀에게 현재 상황과 자신들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비디오를 보여주며 기억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 사랑은 단순한 연애가 아니라 매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진정한 인내와 헌신의 이야기입니다. 결국 루시는 헨리의 진심을 받아들이고, 비록 기억은 이어지지 않더라도 사랑의 감정만큼은 진짜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함께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합니다.
의학적 배경
영화 속 루시가 겪는 증상은 단순한 허구가 아닙니다. 그녀가 앓고 있는 '전향성 기억상실증(anterograde amnesia)'은 실제 존재하는 의학적 질환으로, 특히 외상성 뇌손상이나 해마(hippocampus)의 손상으로 인해 발생합니다. 이 증상은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지 못하는 상태로, 환자는 과거의 기억은 유지하지만 새로운 사건은 몇 분 내지 몇 시간 후에 사라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환자 H.M.(헨리 몰레이슨)의 사례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H.M.은 뇌전증 치료를 위해 해마를 제거한 수술 이후, 새로운 기억을 전혀 저장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고, 이후 평생 과거의 기억만 가지고 살아가야 했습니다. 이 사례는 현대 뇌과학 연구에서 인간의 기억 시스템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 중요한 사례로 꼽힙니다. 루시의 증상은 의학적으로는 일상생활이 매우 어렵고, 주변인의 극진한 보호와 구조적인 일상 재현이 필요합니다. 영화에서는 이 부분이 드라마틱하면서도 감동적으로 묘사되며, 현실성과 영화적 상상력이 적절히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와 오빠가 매일 같은 신문과 같은 음식을 반복하며 루시를 보호하는 모습은 가족애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또한, 영화는 하와이라는 이국적이면서도 평화로운 공간을 배경으로 설정함으로써, 루시의 고통스러운 현실과 헨리의 사랑이 더욱 아름답게 다가오도록 연출했습니다. 이 배경은 단지 로맨틱한 장치가 아니라, ‘매일이 새롭고 낯선’ 공간과 맞물리며 스토리의 깊이를 더합니다.
총평
<첫키스만 50번째>는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의 구조를 벗어나, 기억이라는 인간 내면의 근본적인 문제를 사랑과 연결시켜 깊은 감동을 선사합니다. 매일 반복되는 사랑 고백 속에서 헨리가 보여주는 인내심과 노력은 관객들에게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는 단순히 상대방을 좋아하는 감정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상대방의 아픔을 함께 하고, 그 상처까지 끌어안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아담 샌들러는 기존의 코믹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따뜻하고 진중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감성적 연기를 완벽히 소화합니다. 드류 배리모어는 매일이 처음인 하루를 살아가는 루시의 순수함과 혼란스러움을 균형 있게 표현하며, 관객의 감정을 이끌어냅니다. 이 두 배우의 호흡은 영화 전체의 몰입도를 높이며, 진정성 있는 사랑 이야기를 완성합니다. 감정의 반복이 지루함이 아니라 새로운 감동이 될 수 있다는 점, 그것이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헨리의 사랑은 날마다 같은 상황에서도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되며, 사랑이 단지 기억에 의존하지 않는 감정임을 보여줍니다. 특히 루시가 자신과 헨리의 사랑 이야기를 기록한 일기장을 통해 ‘과거의 나’가 ‘현재의 나’를 설득하는 장면은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루시가 헨리와 함께 배 위에서 눈을 뜨고, 자신이 결혼했고 아이까지 있다는 사실을 비디오로 확인하는 순간은 감동의 클라이맥스입니다. 이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사랑은 기억보다 강하다’는 메시지를 가장 강력하게 전달하는 순간입니다.
영화 <첫키스만 50번째>는 유쾌하고 따뜻한 분위기 속에 깊은 인간성과 감동을 담아낸 수작입니다. 기억이라는 인간의 본질적 요소를 로맨스와 결합하여,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도 진정한 사랑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관객에게 심어줍니다.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이 영화는 사랑의 의미와 관계의 본질에 대해 되돌아보게 하는 귀중한 시간을 제공합니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면, 오늘 하루는 이 특별한 이야기에 빠져보시기를 추천합니다.